독서

어둠뚫기 - 박선우

이비츠 2025. 12. 3. 08:08
728x90
반응형

어둠 끝에서 마주한 얼굴, 엄마

 

박선우 작가의 어둠뚫기는 제30회 문학동네소설상 수상작으로 총 여섯 개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작품은 엄마와의 관계에 관한 이야기, 주인공 자신의 게이로서의 삶과 정체성, 직장생활의 고단함, 작가로서의 갈등 등에 대해 쓰여져 있다.

 

이 소설은 단순히 모자가 함께 살아가는 일상담을 기록한 작품이 아니라, 성 정체성과 가족 관계, 그리고 삶을 이어가는 의지라는 주제가 잘 엮여져 있다.

 

이야기는 어머니와 아들이 한집에 살면서 벌어지는 소소한 일들에서 출발한다.

누군가와 같이한 세월이 지닌 힘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영향이 세서 결코 사랑할 수 없을 것 같은 사람마저 사랑하게 만든다 그리고 작가에게 그 대상은 엄마였다.

웃음이 절로 지어지는 문구이다. 애증이라고 해야할까. 엄마라는 존재는 언제나 사랑이라는 겉껍질로 싸여져 있으나, 그 속으로 파고 들어가면 미움과 실망과 이해할 수 없음의 결정체이다. 하지만 시간의 옷이 켜켜이 입혀지고 나면 결국 엄마라는 존재는 사랑이라는 표현으로 남게 된다.

 

주인공은 성 소수자로서의 혼란된 감정을 초등학생 시절에 느끼고, 엄마에게 그 감정을 고백하지만 두 아들을 남편없이 키워내고자 생활에 찌들어 사는 엄마는 그 감정을 외면하고 아무것도 아닌것으로 치부한다. 그럴 수 있어. 엄마도 그랬어. 그렇게 대응함으로써 아들이 그 시기를 넘기기만을 바랄 뿐이다. 그런 외면과 무시는 계속적으로 주인공이 서른 일곱의 사회인으로 성장한 지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하지만 엄마를 대하는 주인공의 마음은 달라져 있다. 엄마와 함께한 삼십 칠년의 세월동안 엄마를 이해못하고 미워했었지만 엄마와 함께한 세월, 함께 식사하고 함께 갈등하고, 때로는 불편하고 때로는 긴장하는 세월들이 켜켜히 쌓이면서 갈등과 불화는 서로에게 기대고 의지하지 않을 수 없는 깊은 연대를 낳게 되었다. 갈등과 불화가 세월의 겹으로 의리가 되고, 이제는 사랑의 이름으로 포장이 되었다고나 할까.

 

엄마는 일찍 죽은 남편 대신 봉재 공장에서 일하면서 삶의 무게를 오롯이 견디며 두 아들을 키워냈다.

엄마는 가난과 외로움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쳤고, 죽음으로써 모든 것을 포기하려 한 적도 있었다. 그러나 아이들의 숨결을 확인하는 순간, 죽음을 결심했던 마음을 거두고 다시 삶을 이어가기로 한다. 주인공이 삶을 너무 힘들어 할때 엄마는 이 이야기를 하며, 주인공의 등을 퍽 친다. 그러니까 살아.

엄마가 아이들을 살리기 위해 스스로를 붙잡는 힘은, 단순한 모성 본능을 넘어 인간 존재가 서로를 통해 어떻게 다시 일어설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주인공은 게이이다. 그는 자신의 존재를 부끄러워하지 않으려 하지만, 사회와 가족의 시선 앞에서는 늘 긴장한다. 심지어는 같은 동성애자에게서도 멸시를 받기도 한다. 그런 그를 모든 것을 떠나서 자연속의 존재 자체로 인정해주는 것은 엄마이다. 엄마는 아들의 성정체성에 대해서 인정도 부인도 하지 않는다. 단지 오롯이 자신의 아들로서 대할 뿐이다. 주인공은 대외적으로든 가정 안에서든 자기 존재를 인정받지 못하는 불안감에 엄마의 한마디 말, 혹은 침묵에도 마음이 크게 흔들리고 미움이 생기고 감정의 파도가 몰아친다. 하지만, 같이한 세월이 쌓이면서 엄마를 이해하는 마음이 생기고 자신의 정체성도 확고해지면서 비로소 엄마와의 시간이 여유가 있어지고 엄마를 이해하는 마음이 생기게 된다.

 

엄마는 목련이 봄의 시작을 맞이하는 꽃이 아니라 겨울의 끝을 배웅하는 꽃이라 했다. 그간의 모질고 억센 시절을 한껏 여리고 아름다운 자태로 떠나보내는 꽃이라고. 그 모습이 심히 환하고 주책스러워 사랑스럽기 그지없다고 했다.

고통과 인내의 시간을 보내고 위로와 안도의 시간을 맞이한 엄마와 주인공은 이제는 여유있는 시간을 함께 보낼 수 있게 된다. 목련꽃을 보며 계절의 흐름을 느끼고, 골목을 지나가던 포크레인 소리에 생의 울림을 감지하며 주인공은 엄마 곁에서 살아가는 일상의 호흡을 이어간다. 어둠을 뚫고 나아가는 힘은 거창한 이념이 아니라, 서로를 바라보고 함께 살아내려는 몸부림 속에서 나온다. 그래서 작품의 제목처럼, 이들의 이야기는 어둠 속에서도 여전히 길을 찾으려는 움직임의 기록이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엄마와 아들의 동거생활이 일으키는 긴장과 갈등이 이해와 사랑으로 변해감을 볼 수 있었다. 아들은 이해할 수 없음, 답답함을 느끼지만 결국 엄마의 옆에서 봄을 느끼고, 삶의 활력을 느끼며 그도 세상을 살아갈 힘을 얻는다. 서로에게 상처를 주면서도 동시에 치유가 되는 역설적인 관계, 그것이 『어둠 뚫기』가 보여주는 엄마와 아들의 관계가 아닐까.

 

이 작품을 읽으며 나는 나 자신의 경험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내 어머니 또한 젊은 시절 삶을 포기하고 싶었던 순간들이 있었다고 고백한 적이 있다. 그러나 결국 그를 붙잡은 것은 우리 형제들의 작은 손길과 숨결이었다. “내가 무너지면 너희도 무너진다”라는 내 어머니의 말은 『어둠 뚫기』 속 어머니의 고백과 겹쳐 들렸다. 문학 속에서 만난 인물이지만, 현실의 내 삶과 정확히 이어져 있었던 것이다

.

『어둠 뚫기』는 어머니와 아들이 서로를 이해하고 용서하는 과정을 보여주면서, 동시에 우리 사회가 성정체성이라는 문제 앞에서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하는지도 조용히 묻고 있다. 이해하지 못한다고 해서 외면할 수 없으며, 인정하지 않는다고 해서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결국 우리는 각자의 다름을 안고 함께 살아가야 한다. 그 사실을 일상 속 엄마와의 작은 대화와 몸짓, 함께 차린 식탁 위의 음식들로 보여주는 것이 이 작품의 매력이라고 생각한다.

 

마지막 장을 덮을 때, 내 마음 속에 남은 이미지는 어둠을 밀어내고 새벽을 기다리는 사람들의 얼굴이었다. 그것은 완전한 화해나 이해의 얼굴은 아니다. 서로의 숨결을 확인하며 살아가려는 진실한 표정이다. 이 작품은 삶은 언제나 어둠을 뚫고 나아가는 과정이며, 그 길에서 우리를 지탱하는 것은 결국 서로의 존재임을 잊지 말라는 메시지를 전해주고 있다.

 

728x90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