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달팽이 식당 - 오가와 이토

이비츠 2025. 12. 20. 0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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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에 관한 책을 읽은 것은  바베트의 만찬 이후 두번째이다.

요리에 관한 책을 읽고나면 요리를 먹은 것이 아니데도 사건이 벌어지는 장소에 나도 함께 있어서 그 요리를 즐겼다는 느낌이 든다. 묘사가 세밀해서 그런 것일까?

돼지 엘메스를 죽여서 해체해서 요리를 하는 과정은 아주 리얼하다.
엄마가 아끼고 주인공 린코가 매일 아침마다 빵을 만들어 먹인 돼지 엘메스는 엄마의 결혼식 피로연에 대접하는 음식으로 사용된다.
뭔가 그로테스크한 느낌이 들지만, 사랑의 마음과 섬세한 요리 묘사가 곁들여지니 환상의 장면이 되었다.

뚜껑을 열고 안을 확인했다. 분명히 오늘 아침, 내가 손으로 다독거려 놓은 모양 그대로 있다. 쌀겨 표면에는 연녹색을 띤 무잎도 보인다. 껍질을 벗기고 잎을 조금 남긴 뒤, 꽁무니에 열십자로 칼집을 넣어 담가 둔 순무는 달콤하고 싱싱하다.
무사해서 다행이다.

할머니가 남겨주신 겨된장으로 린코는 식당을 시작한다.


다시 살아날 가망은 없었다. 나는 누군가에게 서둘러 연락도 하지 않고, 적어도 하룻밤만이라도 할머니와 둘만의 시간을 보내기로 마음먹었다.


할머니는 점점 차갑게 굳어 갔고, 그 옆에서 나는 밤새 도넛을 먹었다. 반죽에 겨자씨를 넣고, 계핏가루와 흑설탕을 뿌린 그 달콤한 맛을 나는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할머니가 죽기 전에 만들어 놓으신 도넛. 할머니의 시체 옆에서 도넛을 즐기는 손녀. 그로테스크하다. 하지만, 맛있는 도넛을 먹는 손녀의 모습은 순수하고 맛의 느낌이 잘 전달된다.


‘달팽이’는 어떨까?
몇 초도 지나지 않아서 나는 새로 열 식당 이름은 ‘달팽이’밖에 없다고 확신했다.
좋았어!
롤케이크처럼 이불을 둘둘 만 채 혼자 손가락을 딱 튕겼다.


그 작은 공간을 책가방처럼 등에 메고, 나는 지금부터 천천히 앞으로 나아갈 것이다.
나와 식당은 일심동체.
일단 껍데기 속에 들어가 버리면 그곳은 내게 ‘안주(安住)의 땅’이다.

달팽이 식당.
남자친구에게 배신당하고 고향으로 내려온 린코는 좌절하지 않고 달팽이처럼 천천히 나아가기로 결심한다.


나는 깨끗하게 씻은 손으로 식재료를 조심스레 만졌다. 갓 태어난 작은 생명을 감싸듯이 하나하나 양손으로 들어 올리고, 눈을 감은 채 몇 초간 식재료들과 말을 주고받았다.

섬세한 요리사.


오전 내내 내렸던 비가 그치고 밖에는 아름다운 석양이 하늘에 깔려 있었다. 마치 지구를 거대한 꿀단지에 담가 놓은 것 같았다.

요리에 진심인 요리사에게는 석양마저도 꿀단지가 된다.


“이참에 엘메스를 먹어 버릴까 해. 그 애한테도 그편이 행복할 거야. 내가 없어지면 그 애도 슬플 테고. 그러니까 마지막 소원이라 생각하고…….”

암에 걸려서 곧 죽게될 엄마는 돼지 엘메스를 결혼식 피로연에서 먹어버릴 생각을 한다.

돼지는 린코가 동네 아저씨의 도움을 받아 죽여서 해체하고 요리를 한다.

신혼여행을 갈수 없는 엄마를 위해 세계 각국의 요리로 만들고, 엄마는 흐뭇해한다.

엄마를 기쁘게 하는것, 이것이 요리의 근본이 된다.

엄마가 돌아가시고 슬픔에 잠긴 린코에게 어느날 산비둘기가 나타나 창문에 부딪쳐 주고, 이를 요리해서 먹음으로써 린코는 다시 용기를 얻고 식당을 계속해 나가기로 한다.

음식은 사랑이다.
할머니에 대한 사랑에서 시작하여, 요리를 통해 엄마에 대한 오해도 풀고, 더 나아가서 사람들에게 사랑을 심어 주었다.

책을 읽고나니 마음이 따뜻해지는 요리를 한 그릇 먹은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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