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늙지 않는다 – 백수린 「흑설탕 캔디」를 읽고
백수린의 단편 「흑설탕 캔디」는 늙음과 사랑의 본질을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프랑스에서 피아노 소리를 듣던 할머니의 이야기를 통해, 나 역시 ‘나이 듦’과 ‘설렘’에 대해 조용히 돌아보게 되었다. 사랑은 사라지지 않는다. 늙는 것은 몸일 뿐, 마음은 언제나 젊다.
프랑스의 햇살 속, 설레는 할머니
책을 덮고 나서 한참 동안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백수린의 『여름의 빌라』 속 「흑설탕 캔디」는 조용하지만 묘하게 오래 남는 이야기였다.
할머니의 젊은 시절을 상상하며, 그 속에 숨어 있는 감정들을 하나하나 따라가다 보니 나도 모르게 마음 한구석이 따뜻해졌다.
이야기의 주인공은 돌아가신 할머니를 떠올리는 손녀다.
할머니가 프랑스에서 보낸 시간을 회상하면서, 그 시절 할머니의 마음속에 스며든 작은 설렘을 상상한다.
피아노 소리를 따라 낯선 남자에게 다가가던 순간, 아무 말도 통하지 않지만 서로를 바라보던 장면이 떠올랐다.
그 대목을 읽으며 나는 이상하게도 내 할머니 생각이 났다.
젊은 시절, 늘 참았던 욕망과 하고 싶은 일을 뒤로한 채 가족을 위해 살아온 여성들.
그분들이 한때는 우리처럼 웃고, 사랑하고, 설레던 사람들이었다는 사실을 종종 잊고 지낸다.
하지만 「흑설탕 캔디」 속 할머니는 그 잊힌 ‘여자’로서의 자신을 잠시나마 되찾는다.
프랑스의 햇살 속에서, 피아노 선율을 들으며 느꼈을 그 감정은 단순한 호감이 아니라 “아직도 살아 있다”는 확신이었을 것이다.
그 장면이 너무 아름다워서, 읽는 내내 마음이 아프면서도 따뜻했다.
내 안에도 늙어가는 마음이 있다
이 작품을 읽으면서 제일 크게 와닿은 건 ‘늙는다는 게 뭘까?’ 하는 질문이었다.
할머니는 몸이 굳어가는 만큼 마음도 무뎌진다고 생각했지만, 결국 깨닫는다. 퇴화하는 건 육체뿐이라는 것을.
그 말을 읽을 때, 나도 잠시 멈춰 섰다.
나 역시 나이가 들수록 감정이 점점 옅어지는 것 같다고 느낄 때가 있다.
어릴 때처럼 쉽게 설레지도 않고, 감동도 덜하고, 모든 게 조금씩 건조해지는 느낌.
그런데 이 작품은 내게 말했다.
“감정은 늙지 않는다”고.
몸은 변하지만 마음은 여전히 사랑을 느끼고, 누군가를 그리워하고, 음악에 울 수 있다는 사실.
그 단순한 진실이 어쩐지 눈시울을 뜨겁게 만들었다.
흑설탕 캔디처럼, 느리지만 오래 남는 감정
프랑스인 할아버지가 각설탕을 입안에서 굴리며 쌓던 장면이 유난히 인상 깊었다.
아무 쓸모없어 보이는 행동이지만, 그 속엔 어린아이 같은 순수함이 있었다.
그리고 할머니는 그 모습을 보며 다시 ‘설레는 자신’을 발견한다.
나는 그 장면을 읽으며 ‘흑설탕 캔디’라는 제목의 의미를 이해했다.
흑설탕은 하얀 설탕처럼 단번에 녹지 않는다.
시간이 걸리지만, 단맛은 오래 남는다.
인생의 후반부에 찾아온 감정도 그렇다.
천천히 피어나지만, 한 번 느끼면 쉽게 잊히지 않는다.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 아닐까.
어릴 땐 모든 감정이 빠르게 지나가지만, 나이가 들수록 느리게 스며들고 오래 남는다.
그게 바로 ‘성숙한 사랑’이고, ‘늙지 않는 마음’이다.
사람에게 기대어 산다는 것의 쓸쓸함
이야기 후반부에서 할머니는 “사람에게 기대어 산다는 것은 허무한 일이다”라고 생각한다.
그 말이 마음에 오래 남았다.
누군가에게 기대고, 믿고, 사랑했지만 결국은 상처받고 실망했던 경험.
그건 누구나 겪는 일이다.
나도 그랬다.
가까운 사람에게 실망하고, 내가 믿은 감정이 배신으로 돌아온 적이 있었다.
그럴 때마다 마음속에서 “이제는 아무도 믿지 말자”는 말이 올라왔다.
하지만 결국 또 사람을 믿고, 사랑하게 된다.
그 이유를 이 작품이 말해준다.
사랑은 배신당해도 사라지지 않는다.
사람은 변하지만, 감정의 근원은 변하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는 다시 설레고, 다시 믿고, 다시 사랑한다.
사랑은 늙지 않는다
책을 덮은 후, 나는 오랫동안 할머니의 젊은 시절을 상상했다.
젊은 날의 내 모습이 아니라, 젊은 날의 할머니를 떠올렸다는 게 조금 이상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동시에 따뜻했다.
나도 언젠가 나이가 들겠지.
그때도 이렇게 마음이 설레는 순간이 있을까?
아마 있을 것이다.
피아노 소리 한 줄에도, 햇살 한 조각에도, 흑설탕 캔디 하나에도 마음이 움직일 것이다.
이 작품은 그런 믿음을 남겼다.
늙는 건 몸뿐이고, 사랑은 끝까지 살아남는다는 믿음.
살아 있다는 건 결국 ‘느낀다’는 뜻이고, 느낀다는 건 아직 사랑할 수 있다는 뜻이다.
맺으며
『흑설탕 캔디』는 내게 잊고 있던 감정 하나를 떠올리게 했다.
“나는 아직도 설렐 수 있다.”
그리고 “사랑은 나이를 먹지 않는다.”
책을 덮으며 나는 조용히 웃었다.
언젠가 나도 흑설탕 캔디처럼, 느리지만 따뜻한 인생의 단맛을 오래도록 굴려볼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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